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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성 시인

기사승인 2018.11.07  18: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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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충성 시인이 타계했다. 한 달 전 쯤 통화를 할 때 많이 힘들어 했는데, 결국 부음이 왔다. 전화를 오래 할 수 없었다. 그 이전 통화에서는 그런 기색이 없이 한참을 얘기했다. ‘죽은 자들’에 대한 시를 더 쓰겠다고 했다.

폐암 3기로 죽음에 가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되자 4.3 때 죽은 이들의 음성이 그의 귀를 쟁쟁 울렸던 건 아닐까.

연초에 제주4.3평화재단에 있는 O로부터 시인이 낸 시집에서 ‘4.3 시’들만을 뽑아 시집을 내고자 한다며 시집들을 빌려 달라고 해서 빌려 준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는 시집 20여 권에서 ‘4.3 시’라고 할 만한 것이 서른 편 남짓이라며 어려울 것 같다고 하며 시집을 돌려주었다.

‘채송화’ 동인 10년, 20호 발간을 그냥 넘기기가 뭣해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유심’ 강의실에서 마련한 행사에는 시단 원로 등 50명 가까이가 왔다.

내게 멀리서 왔다고들 한다. 다음 날 아들네 집에서 좀 일찍 나와 북촌의 정독도서관 벤치에 앉아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있는데, 철상 형의 전화가 왔다. 문 시인이 돌아가셨다고. 일산백병원까지 갔다가 공항으로 가면 시간이 좀 빠듯할 듯했다. 구내식당도 문을 닫아 인사동으로 가 전통 찻집으로 올라가 앉아 걸쭉한 대추차를 마시고 있자, 현길언 선생의 문자가 왔다. 간단한 타계 소식.

멀리서 왔다고 하는 여기 문인들의 말처럼 제주 섬은 ‘중앙’에서 참 먼 곳이다. 그들의 눈에 ‘제주’는 잘 안 보인다.

40년, 시집 20여 권을 내는 동안 ‘육지’에서 주는 상으로 칠십 넘어 편운문학상 하나가 왔다.

나는 그와 술을 마신 적이 없다. 듣건대 그는 기자 시절 술이 꽤 컸던 모양이다. 계속 마시면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술을 끊었다. 대신 그 자리에 시가 왔다. 1977년부터 쏟아낸 시의 양이 천 수백 편이다. 시집 낸 지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계속 새 시집이 왔다.

첫 시집 ‘제주바다’(1978)로부터 시작하여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청비’, ‘섬에서 부른 마지막 노래’까지는 내가 구입을 했고, 그 뒤 ‘내 손금에서 자라나는 무지개’(1986)로부터 ‘마지막 사랑 노래’(2016)까지는 증정을 받았다.

앞으로 제주 섬의 숙명적인 아픔과 그 자존을 이 시인처럼 이렇게 지속적으로 방대하게 노래할 시인이 또 나올까 싶다.

그의 아내 김청신 여사와의 사랑은 자주 얘기된다. 시인은 제주 오현고, 그녀는 신성여고 학생으로 시인이 1년 연하였다. 서울로 진학한 시인은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섬에 남아 있는 그녀에게로만 향한다. 60여 년의 올곧은 사랑이다. 그녀도 지금 오래 아프다.

‘처음/당신과 내가 바라만 보다가/갔던 그곳/무서웠지 비 오듯/푸른 달빛/쏟아지던 달밤에//세상은 너무 넓었네/중국인 무덤 옆길/돌투성이/오솔길 위에서/길 찾으며/갈 곳 없던 우리/그곳에 가곤 했지//...//당신 이마에/흘러내리는 머리칼/달빛 바람결에/살랑이는/작은 산/산담 위에/나란히/앉아/말없이/달빛이’(작은 산’ 부분, 2001, ‘허공’)

눈, 코 큰 돌하르방 같은 시인의 그 긴 전화 목소리를 이젠 여기서 들을 수 없게 됐다.

 

나기철 시인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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