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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글꼴의 독립운동

기사승인 2018.10.11  17: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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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출판인으로 첫 걸음을 뗀 게 1982년 초겨울이다. 여성지 ‘여원’과 월간 문예지 ‘소설문학’을 발행하는 여원사가 첫 직장이었다. ‘소설문학’ 편집부 기자로 당대의 유명 시인·소설가들을 만나 청탁을 하고, 문학상 심사를 부탁하고, 인터뷰와 문단 소식을 기사로 써내는 일은 버겁긴 해도 해낼 만했다. 다만 대학신문 기자 시절 경험한 납활자 조판에 익숙하다가, 청타와 사진식자를 다루는 것이 낯설었고, 국8절 크기 식자필름을 써야 하는 것이 처음이라 서툴렀다.

한편 하리꼬미, 하시라, 돈땡, 혼가께 등등 일본어 잔재들을 사용해야 하는 관행이 민망하고 난감했다. 특히 일제 사식기인 모리자와나 사켄으로 찍어낸 사진식자를 따붙이고 배열해 편집을 할 때는, 직지(直指)와 훈민정음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문예지 기자로 일한다는 자긍심조차 무색해졌다. 그런데다 일본회사들이 자사 사진식자기를 판매하려고 개발한 한글 명조체를, 우리 고유의 궁체에서 유래된 명조체로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착각을 넘어 심각한 무지였다.

그러다가 20년 세월도 더 지난 2006년, 글꼴에 대한 무식과 무지를 바로잡는 기회가 주어졌다. 모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출판잡지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밟으면서였다. 내가 여전히 ‘글꼴 문맹’이던 그 시절에도 우리 글꼴의 독립투쟁이 가열하게 펼쳐지고 있었던 것을 이기성 박사의 ‘한글 타이포그라피’ 강좌를 통해 비로소 깨우쳤다.

‘한컴오피스 혼(ㅎ+아래아+ㄴ)글’을 띄워 글꼴 메뉴를 열어보면 가는안상수체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글꼴들이 가나다순으로 주르륵 뜬다. 열한 번째부터는 문체부 궁체 정자체, 문체부 궁체 흘림체, 문체부 돋움체, 문체부 바탕체, 문체부 쓰기 정체, 문체부 쓰기 흘림체, 문체부 제목돋움체, 문체부 제목 바탕체, 문체부 훈민정음체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문체부 글꼴은 1991년 당시 문화부장관이던 이어령 선생이 정부예산을 지원하고 당대의 이름난 서예가인 최정순·정주상 등이 원도 제작, 지적디자인과 미적디자인, 폰트 제작 알고리즘은 이기성·홍윤표·박병천 등이 맡아 5년 동안 공들인 끝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초기에 불리던 이름은 문화바탕체(돋움체, 쓰기체 포함)였다. 이 시기에 ‘한글 글자본 제정 기준’도 확정(1992년 12월)되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우루과이라운드에 가입(1993년)하면서 자동적으로 베른조약의 규정을 따른다. 단 지난 50년 간 우리가 사용한 외국의 지적저작권에 대해 소급 적용으로 보상해야 하는 것을 10년 치만 소급하기로 했다.

이 무렵 문화바탕체 글꼴 개발과 저작권 문제와 관련한 지혜로운 대처가 없었다면 우리는 일본 서체 등을 울며 겨자먹기로 사용하면서 막대한 저작권료를 지급할 뻔했다. 이런 이유로 1991년에 시작된 한글 글꼴개발 작업을 ‘우리 글꼴의 독립운동’이라고 추앙하는 것이다.

지난 9일이 572돌 한글날이었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창제, 반포한 1446년으로부터 6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마침 ‘600세 한글, 예술이 되다’라는 제목으로 젊은 글꼴 디자이너들의 활약을 전하는 신문기사를 접했다. 우리 한글의 글꼴을 더욱 아름답고, 읽기 쉽고 판독하기 좋게 만들려는 노력이 ‘2010년 이후 시대적 감성을 담은 글꼴을 속속 내놓고 있다’는 소식이다. 배달의민족 한나체, 비가온다체 등 글꼴 이름도 발랄하고 신선하다.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에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가 있다”라고 했고 “심지어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 개 짓는 소리라도 모두 글로 쓸 수가 있다”라고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말하고 있다.

572돌 한글날을 기리면서, 우리 한글의 우수성과 미려함을 지키며 빛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인다.

 

정희성 농부시인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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