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훈 / 시인
 |
||
어릴 때는, 우리 시골의 모습이 도회지에 비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부끄러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도시의 그 시원시원하게 일직선으로 뚫린 도로며 네모지게 구획 정리된 주택지에 비해, 제주의 돌담으로 엉성하게 두른 마을길과 집들과 밭들은 온통 구불구불 제멋대로여서 너무나 작고 초라하게까지 보였습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그 자연스러운 멋과 맛을 알게 된 이후에는 저의 어릴 적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 그 치기 어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들 때문에 제주도의 현실이 각박하게 되고 미래가 암울하게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외형적인 거대함과 화려함의 거품보다는 알토란같은 내실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눈 뜬 봉사들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답던 제주시 탑동 바다를 매립해서 무엇이 좋아졌습니까? 호텔이 들어서고 휴게 공간이 늘어서 당신은 좋아졌다고 말하시렵니까? 탑동 매립과 병문천 복개로 인한 월파 피해나 물난리 등은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요즘 이 탑동 바다를 또 매립하겠다는 방안이 나오고 있습니다. 난개발에 이어 막개발까지 추가되고 있습니다.
개발과 파괴의 난맥은 제주시 구도심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도로가 하나 더 생긴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사통팔달(四通八達) 도로를 뚫어놓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차량들로 정체가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미 제주도는 개발과 파괴의 악순환이라는 거대한 중병(重病)을 앓고 있습니다.
해당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한다는 목적으로 확장공사를 하는 비자림로도 그렇습니다. 이건 비교적 작은 사안에 해당되지만,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제2공항이나 툭하면 불거져 나왔던 ‘호남-제주 해저터널’ 같은 거대한 규모의 개발은 제주도를 선 아닌 섬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주도는 세계 도처의 다른 도시들과 차별성이 전혀 없게 됩니다. 비슷하게 올라가는 건물들, 비슷한 사고로 살아가는 그 속의 사람들. 말 그대로 세계화란 이름의 보편적 군상일 뿐입니다. 특수한 문화나 그런 사고가 없이 획일적인 것만 보편이란 이름으로 강제될 것입니다.
제 말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관광이란 이름으로,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에 손을 대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멈춰야 합니다. 제주도를 온전히 보존하고 후대들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합니다. 자연경관을 자랑하면서 그 좋은 자연경관을 파괴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현재 제주도의 마을마다 있는 개발위원회라는 조직을 보존이나 복원위원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개발보다는 마을 공동체의 복원과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토대 위에서 필요한 부분만 개발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이웃과 자연에 대하여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구조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자연 또한 우리를 소중히 여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연의 신비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베어 넘긴다면, 언젠가 자연 또한 우리를 삶 밖으로 내동댕이칠 것입니다. ‘우리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은 부유해진다’는 헨리 D 소로우의 말을 되새깁니다.
김경훈 jejupress@jejupres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