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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많을수록 좋지만, 꿈이 없어도 괜찮다

기사승인 2018.08.30  19: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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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부터,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내, 학창시절을 마차고 취준생일 때조차 부딪치는 질문이 있다. 너는 꿈이 뭐니? 너의 꿈은 무엇이냐? 모든 질문은 대답을 요구하고, 질문을 받은 사람은 대답을 준비하게 된다. 고민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까? 나의 꿈은 반복되는 오답노트를 거쳐 정답에 가까워진다.

질문을 던진, 대부분의 경우 어른인, 그들의 흡족한 표정이 적절한 힌트가 돼준다. 정답은 정해져 있기 마련이니까. 그렇게 다듬어진 꿈이란 결국 나의 꿈이 아니다. 나에 대한 타인의 희망사항을 스스로에게 체화한 결과이다. 나의 꿈을 말한다는 것은 그 꿈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염두에 두고 시험답안지를 제출하는 것과 같다.

질문을 바꿔보자. 나의 꿈은 무엇일까? 꿈은 자신에 대한 성찰이고 통찰이며 전망이다. 자기 자신을 보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꿈이다. 그래서 꿈은 내가 경험하는 것만큼 싹을 틔우고 자란다. 

어린 시절의 꿈이란, 성장하는 과정에서 만나고 경험하게 되는 사람들을 닮고 싶은, 그러니까 일종의 사회화 과정 속에 나타나는 역할 모델이다. 역할 모델은 최종적인 지향점이 아니다. 계속해서 바뀌는 게 정상이다. 역할 모델은 사회화 과정 속에서 인격의 한 요소로 소화된다. 다양한 역할 모델들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자아의 정체성(identity, 나다움)이 구성된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면서 역할모델이 새로 생갈 때마다 꿈이 많아진다. 많은 꿈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현실 속에서 하나씩 꺼내어 살아보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꿈은 많을수록 좋다.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할까?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갈까? 고민하는 고등학생들을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신학대학원에 갔고, 신학대학원에 갔지만 ‘죽은 사회의 시인들’과 동인을 꾸려 시를 쓰기도 했고, 신학대학원을 나와 목사가 됐지만 지금은 목사 일을 하지 않고 사회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살고 있다고.

전공을 했다고 해서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전공을 선택해서 대학에 갔다가도 얼마든지 전공은 바꿀 수 있다고. 그러니 평생 직업을 바라보며 전공을 선택하려 하지 말고, 지금 하고 싶은, 지금 마음이 끌리는, 그런 학과에 가서 해! 보! 고! 계속 하든지 바꾸든지 하면 된다고. 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하나의 꿈을 정해서 그 길만 고집하느니 차라리 꿈이 없는 것이 괜찮다고.

강요된 꿈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이 시대 청소년들이 꿈이 없는 이유는 바로 꿈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 많던 꿈이 청소년이 되면서 사라져 버린다. 꿈을 강요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을 청소년들이다. 꿈을 꿈으로 남겨두고, 오늘의 현실을 살아가면서 좌절과 행복을 함께 맛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사회에서, 흘리는 땀이 영글어가는 과정을 행복으로 느끼는 청소년들이 되도록 지켜볼 수 있으면 좋겠다. 강요당하는 꿈에 짓눌리지 말라고, 꿈이 없어도 괜찮으니 뜻대로 잘 안되는 현실 속에서 살아남는 훈련을 하라고, 꿈은 얼마든지 바꿔도 좋으니 뜻대로 잘 안되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라고, 딸들에게 아들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김준표 박사/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강사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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