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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목리 솟대

기사승인 2023.12.04  16: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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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윤슬이 햇빛 가루를 뿌린 듯 눈부시다. 파도는 검은 바위에 부딪히며 밀려 났다가 들기를 반복하고 있다. 바닷가에 서니 비릿한 냄새와 끈적한 바람이 달려든다. 포구에 닻을 내린 작은 배들은 긴 오수午睡에 젖고 도대불만 외롭게 서 있다. 
 
 해안선이 섶섬 양옆으로 선명하게 들어온다.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바다, 모두 수평이다. 은밀한 만남의 수평선을 건너고 싶은 보목 포구가 시 한 편을 붙들고 있다. 왜 하필 시인가? 응시할수록 ‘한라산 소주’에 자리물회 한 그릇을 즐겼던 시인이 물그림자로 번진다.
 
 희뿌연 달빛이 문창호지를 뚫고 방구석에 내려앉는다. 시인은 외롭게 틀어박힌 앉은뱅이 밥상 위에 노트를 끌어다 시를 쓴다. 
 
 “떨어져 다시는/오지 않는 것이 있다//허구한 날/바람은 불고//모든 흔들리는 것들이/흔들리며 있는 동안은//떨어져 다시는/오지 않는 것이 있다.” 
 
 한기팔 시인의 시 〈꽃〉이다. 그리움의 표현이었을까. 꽃이 그립고 사람이 그립고 누군가를 간절히 생각하며 시향에 온몸을 적신다. 
 
 겉보리 몇 됫박 주고 산 누런 마분지 포켓 시집은 그의 첫 연인이었다. 이중섭의 은지처럼 연인을 바닷가 언덕이나 학교 뒷동산에서 내밀하게 만난다. 얼굴에 내려앉은 햇살과 바람을 어루만지며 가녀린 풀잎에게 속삭이듯 읊는다. 연인의 마음 하나 품어 안으면 어머니 숨결 같이 포근했다. 
 
 서쪽 고근산 하늘의 별 하나, 북망산인 그 산을 기어오를 때면 얼굴도 모른 아버지를 만난 듯 끼룩끼룩 울며 눈물을 훔치곤 했다. 얼마나 아버지가 그리웠을까. 나른한 봄날엔 들꽃을 뜯어 아버지 무덤에 뿌리면서 빙빙 돌며 놀았다 하니, 어린 시절 상여 소리는 외로움의 시어詩語가 되었으리라. 
 
 바닷가 물떼새 소리는 밤마다 그의 잠을 깨웠다. 종가집의 유복자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 부재의 그리움을 서귀포, 보목리, 마라도에 풀어놓는다. 그러면서 서정주과 박목월을 사제지간으로 만나고 박용래를 형님으로 만난다. 큰 바위 같은 그들과의 만남은 큰 행운이었다. 꽃잎 같은 몸짓으로 그들은 그에게 큰 울림이 되며 시향을 불러왔다. 멀리 떠난 해녀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바다의 젖가슴을 빨며 자리돔 건지듯 시어를 낚는다.
 
 그는 모 호텔의 미당 화갑 시화전에서 N 시인을 첫 대면한다. 전생의 인연因緣이었는가. 만난 순간 사랑하는 남녀처럼 서로 끌린다. 부드러운 목소리, 엷은 미소가 온 몸을 휘감으며 코트 속의 체화된 숨은 언어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30년 넘게 시詩의 세상에서 곰국처럼 진득한 도반으로 함께 한다. 한라산 영실, 전라도와 충청도, 몽골 들판, 오키나와, 러시아로 함께 다니며 시의 향훈에 흠뻑 젖는다. 
 
 가슴속에 담아둔 싯귀에 대한 생각과 의견은 열 살을 뛰어넘는 나이와도 상관이 없다. 시를 출산하면 서로 소금기에 절인 생각을 꺼내 풀어 헹구면서 온몸에 촉수를 맞춘다. 거나하게 탁주잔을 기울이는 날은 보목리 바닷가에 시심을 뿌리며 열무겉절이 버무리듯 정을 나눈다. 보목리 마을도 바다도 술에 취한 듯 출렁거리며 덩달아 얼큰해진다. 
 
 때가 되면 꽃을 피우듯 구정 다음날, N 시인은 어김없이 서귀포 보목리로 길을 나섰다. 그도 N 시인을 기다린다. N 시인이 집을 방문해 세배를 올리면 떡국상이 차려진다. 그의 아내가 온 정성을 다한 상차림, 한 편의 시다.  
 
 국물에 가래떡을 넣고 고명을 얹으니 오색 꽃으로 피어난다. 가래떡에 담긴 가락과 리듬은 내재율이다. 술안주로 여러 가지 전과 적, 나물로 차려낸 상차림은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미각을 파고드는 그 맛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감칠맛이 입안에 스며들며 뭉그러진 살점은 육화되어 몸에 좋은 영양으로 훅~ 풍겨온다.  
 
 매화꽃이 다 떨어진 따스한 봄날, 경적이 들려왔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시인은 의식을 잃고 『잠수종과 나비』의 보비처럼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평생 스스로 “시로 영혼과의 모험을 했노라”던 그는 한 마디 말도 없이 스르르 가라앉고 말았다. 
 
 저녁노을이 내린 보목 포구에 달빛을 껴안은 물비늘이 반짝인다, 심연 속으로 흐르는 불빛이 절망의 그림자를 짓누른다. 뼛속까지 들어찬 울음을 쏟아내려고 해도 이젠 울 수조차 없다. 은빛 머리 나부끼는 억새꽃이 날아간 자리가 꺼질 듯하다. 그의 미학적 에스프리가 뇌리에 박힌다. 밤바다에 띄운 푸른 해후邂逅를 섶섬의 숫구멍에 적바림해 둔다. 시의 바다에 흠뻑 젖은 보목리 솟대, 서쪽 하늘로 날아가며 날갯짓한다. 

오인순 수필가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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