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
ad27

퀘렌시아, 오름

기사승인 2020.07.30  17:35:00

공유
default_news_ad1
   
 

지긋지긋했던 장마가 끝나가는 것 같다. 기상청 예보에 의하면 올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란다. 계절의 변화를 탓할 수 없는 일이고,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열대야까지 겹치면 밤낮으로 힘든 시간이 될 것은 자명하다. 마치 많은 관중이 열광하는 투우장의 소와 같이 탈진한 인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스페인의 투우장에는 극심한 흥분과 공포에 빠져있는 소가 붉은 천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며 투우사와 사투를 펼친다. 피범벅이 될 때까지 싸우던 소는 어느 순간 투우사를 외면한 채 어딘가로 달려간다고 한다. 투우장 한쪽에는 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이 있다. 싸움에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만이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어로 퀘렌시아라 부른다. 피난처, 안식처라는 뜻. 사회에서 지친 인간들에게도 안식처가 필요하다.

교만과 이기주의가 난무한 도시를 떠나 노꼬메오름을 찾아갔다. 노꼬메오름은 높고 가파른데 남북 두 곳에 봉우리를 가진 커다란 화산체이다. 북봉이 정상으로 말굽형 화구로 트인 북서쪽에 암설류의 작은 구릉들이 몰려 있다. 원래 원형의 화구였던 것이 침식되면서 느슨하게 무너져 내린 것들로 보인다.

오름은 해안 절경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오름이 제주인의 삶과 긴밀한 관련을 맺게 된 것은 우선 오름의 외형적 모습이 인간 친화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고 친근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오름은 자연스럽게 제주인에게 가장 소중한 삶의 공간이 되었을 것이다.

주차장에서 걸어 들어가 목장길이 끝나면 숲속의 조그만 길을 만난다. 숲길은 잡목림과 삼나무, 소나무 조림지로 나누어져 나무가 빽빽하다. 서어나무, 때죽나무, 졸참나무가 주종이고, 가끔 산딸나무, 비자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팥배나무, 사람주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숲속의 공간은 자연이 허락해준 싱그러움과 포근함이다. 시원스러운 온도, 자리돔 물회에서 풍기는 향기로운 내음, 생명이 움칠거리는 연녹색 이파리들이 내 몸으로 살살 다가와서 스며든다. 식물들에 의해 발산되는 공기는 청정하고 살균의 기능이 있어 몸에 이롭다 한다. 속된 욕심으로 공기통풍과 땀 흡수가 잘되는 간편한 복장하고 울창한 숲속을 따라 올라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선한 공기를 가슴속 깊은 호흡을 했다. 숲에서 발산되는 피톤치드를 마시면 몸과 마음이 맑아져 고요함을 느끼게 된다는데, 이것이 퀘렌시아가 아닌가.

숲길을 나서면 사방이 탁 트인 정상부 산등성이다. 어머니의 젖꼭지 같은 백록담이 하얀 뭉게구름 위로 포근하게 다가온다. 주변에는 산들바람 유혹에 춤추는 억새들의 군무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장관이다. 제주 사람들에게 오름은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며 마음의 고향이다. 오름에 접해 있는 마을의 모습, 이곳저곳 흩어져 있는 무덤, 오름이 있는 제주의 자연은 매우 인간적이며, 제주인의 삶과 문화가 형성되는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삼별초나 4·3과 같이 생명이 위험한 시기에 오름은 제주의 민초들에게 피난처였으며, 마을 가까이 자리 잡은 오름에는 한을 풀지 못한 울부짖음이 있다.

오늘도 노꼬메오름 정상에는 거룩함이 서려 있다. 완고한 인간의 모습으로는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성스러움에 숙연해질 뿐이다. 제주의 오름은 퀘렌시아가 아닌가.

김구하 수필가

<저작권자 © 제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d28
default_news_ad3
ad29

최신기사

default_news_ad4
ad30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ad31
default_bottom
#top